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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www.escapistmagazine.com/articles/view/issues/issue_12/75-A-Conversation-with-Chris-Crawford

크로포드와의 대담
A Conversation with Chris Crawford

오레건 주의 숲 속에 살며 투자도 없이 저평가받으면서도 미국 게임 디자인계의 학장님을 자처하며 홀로 분투하는 남자. 그는 게임과의 인연을 끊었다. 아니, 아마 누군가는 말할 터, 게임이 그와의 인연을 끊었다고.

크리스 크로포드는 누구고, 그는 왜 홀로 분투하는 것인가?

그는 자신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용을 죽이려는 몽상가 돈키호테일까? 아니면 그는 과학의 진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생애의 마지막에 불가능하고 웅대한 이론을 좇으며 시간을 보냈던 탁월한 천재 알버트 아인슈타인일까? 그도 아니면 그의 재주에 대한 빛나는 통찰로 고독의 황야에서 벗어난 비할 데 없는 달인 미야모토 무사시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를 추적해보았다.


청년 시절 디자이너로서의 초상

어디서 시작해야할 지 몰라서, 크로포드에게 그가 게임을 접하기 이전에 대해 물어보며 시작했다. 그리 많이 말하진 않았다.

"물리를 공부해서 물리학 석사 학위를 얻었고, 2년 동안 물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곤 다시 켈리포니아로 돌아가 가르치는 일을 얻었는데 미칠 것 같더군요. '에너지 위기'에 대한 고등학교 회의를 했습니다." 그는 재빨리 덧붙였다. "그 때에도, 게임을 꽤 열심히 만드는 중이었습니다. 1976년 IBM 1120에서 제 첫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죠."

크로포드는 1979년 아타리에 들어가 아타리 홈 컴퓨터 시스템으로 두 개의 교육용 시뮬레이션 게임, <에너지 군주>, <스크램>을 만든다. 그 후 그는 프로그래머 교육 관리직으로 승진하는데, 남는 시간을 이용해 그의 첫 베스트셀러인 <동부 전선>(1941)을 만들었다.

<동부 전선>(1941)은 크로포드의 가장 가치있는 창작물 중 하나이기에 그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다. "<동부 전선은 하나의 명확한 아이디어를 창조적으로 실현한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디어란 바로 '컴퓨터 상에서 좋은 전쟁게임을 해보자!'는 거였습니다." 그는 이어 말했다. "그걸 실현시키려면 몹시 많은 창조성을 필요로 하는데, 전략적 창조성에 반대되는 전술적 창조성을 필요로 하죠."

그게 무슨 뜻인지 헷갈렸다. 크로포드는 솔직히 말한다는 평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건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한 종류의 솔직함이었다. 그와 말하는 것은 <시간의 역사>를 분당 120단어씩 읽는 것에 견줄 수 있었다. 항상 뭔가를 놓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전술적 창조성은 실현의 창조성입니다. 어떻게 좋은 지도를 만들까요? 어떻게 유닛이 주변을 돌아다니게 할까요? 어떻게 좋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만들까요? 당신은 이미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단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밝혀내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게임계가 전략적 창조성보다 전술적 창조성에 신경써야 한다고 말씀하려는 건가요?" 나는 물었다.

"요즘 우리가 창조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정말 작은 겁니다. 그건 창조성이라고 부르기조차 어렵습니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맞아요, 정말 많은 창조성을 봅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디자인의 창조성이 나온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는 주제가 철학으로 옮겨가기 전에 그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다시 지엽적인 것으로 돌아왔다. <동부 전선> 이후, 크로포드는 <리전에어>, <가십>, <엑스칼리버>를 만들었고, 그의 첫 책인 <The Art of Computer Game Design>을 썼다. 그가 책을 쓴 이유는 강렬한 자기반성이었다.

"저는 <The Art of Computer Game Design>을 정말 독학을 위해서 썼습니다. 무언가를 밝혀내는 최고의 방법은 책을 쓰는 겁니다. 그걸 쓰기 전까지는 스스로 얼마나 무식한지 깨닫지 못 합니다." 그는 설명했다. "그 책은 일년동안 쓰여졌고 산문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 중 많은 시간을 뭔가 분류하는 데 보냈죠."

그러한 지적 자기개발은 이어지는 크로포드의 게임, 그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인 <밸런스 오브 파워>에서 빛을 발한다. 1984년, 그 게임은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수인 25만장이 팔려나갔다. 더욱이 그 때는 아타리가 붕괴한 뒤이자 닌텐도가 등장하기 이전인 암흑 시대였다.

1987년, 크로포드는 그가 7년 동안 회장직을 맡았던 게임 개발자 회의를 설립한다. 또 그는 <믿음과 배반: 시붓의 유산>을 만들었다. "제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게임입니다." 그는 말한다. "<믿음과 배반>은 제가 만들었던 어떤 게임보다도 앞서 나간 게임입니다. 중요한 혁신을 담고 있죠. 혁신이나 창조성을 도약으로 생각해본다면, <동부 전선>은 조금 좋은 도약, <밸런스 오브 파워>는 아주 좋은 도약, 그리고 <믿음과 배반>은 정말 대단한 도약입니다. 완전히 별나죠."

정말 별나다. <믿음과 배반>은 플레이어에게 외계인 복사(服事)의 역할을 맡기고 컴퓨터가 제어하는 다른 종족의 여섯 복사와 목사의 칭호를 얻기 위해 경쟁하도록 한다. 컴퓨터가 제어하는 경쟁자들은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게임플레이의 핵심은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 밝혀내는 것이다. 컴퓨터 게임에 사실적인 인물들을 넣는 것, 인공적인 인격과 언어분석법에 의지한 것은 선구자적인 시도였다. 누구도 그 같은 게임을 만들지 못 했고, 이후로도 없었다.

그 게임은 약 5000장 밖에 팔리지 않았다.

<믿음과 배반>은 크로포드의 마지막 컴퓨터 게임 디자인이었다. 8년간 그는 12개의 게임을 디자인했었다. 다음 4년간은 4개만을 디자인했고, 그 중 둘은 후속작이었다. (<밸런스 오브 파워 II>와 <패튼의 역습>) 다른 둘은 세계 시뮬레이션으로 둘(<건즈 앤 버터>, <밸런스 오브 플래닛>) 모두 1990년에 발매되었다.

크로포드에게 <밸런스 오브 플래닛>에 대해 물어보자, "좋았지만, 내가 만든 것들 중 최고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몇 년전, 그는 지금처럼 신중한 반응을 보이지 못 했다. 1997년의 에세이에서, 크로포드는 <밸런스 오브 플래닛>의 발매에 대한 그의 반응을 말했었다.

그 디자인이 너무도 자랑스럽다! ...환경 정책 문제를 솔직히 언급하고, 컴퓨터가 복잡한 문제를 얼마나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그걸 지금 막 해버렸다... 그럼에도 그것을 내놓았을 때, 업계와 언론, 그리고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마 그들의 반응은 <컴퓨터 게이밍 월드>에 실린 <밸런스 오브 플래닛>의 리뷰에 가장 잘 요약되어있을 것이다. '그것은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로 팔리는 것으로서 가장 예술에 가까운 것이다...하지만 재미가 없다...게임이 재미가 없다면, 추천하기에 적절하지 못 한 것이다...'<밸런스 오브 플래닛>이 일종의 예술이라고 말해준 것에는 감사하지만, 리뷰는 그것이 재미없기 때문에 추천하기를 거절했다! ...아마 우리 리뷰어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에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아이고, 베토벤 씨. 당신의 교향곡은 내 마음을 우주의 위엄 속에서 경외심으로 솟구치게 만들지만, 알죠? 재미없어요. 춤을 출 수 있는 곡조나 손가락을 튕길 수 있는 매력적인 짤랑거림을 원한다구요."


율리시스

내가 보기에, 크로포드는 비평가들의 환영같은 칭찬을 받는다면 예술적 작품의 상업적 실패를 감내할 수 있어왔다. 하지만 '재미 요소'가 부족하다는 비평가의 비판은 그가 너무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1993년 게임계를 떠나, 오늘날까지 이어진 10년여 방랑의 길을 시작했다.

크로포드는 그의 재출발을 '드래곤 스피치'(Dragon Speech)로 알려진 역사적인 강의에서 발표했다. "그건 내 인생에서 주어진 가장 훌륭한 강의였습니다." 크로포드가 말한다. "저의 예술 형식으로서의 게임에 대한 추구, 그리고 업계가 돈을 추구하며 그 꿈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어떻게 봐왔는지 말했었습니다. 업계는 정말 어떤 염치도 없이 가치있는 것은 뭐든지 했습니다. 단지 금방 눈 앞에 보이는 것에서만 돈을 끌어모았죠. 그런 태도로는 이 업계에 진정한 미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떠나서 저만의 것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왜 이름이 '드래곤 스피치'인지 물어보았다. "강좌 내내 저는 드래곤을 예술적 이상을 나타내는 수사학적 장치로 사용했습니다. 저를 업계의 모든 논리와 짊어진 현실에 대항하는 돈키호테로 하구요."

"저는 돈키호테 이야기를 하며 강좌를 마무리했습니다. '맞아요, 저는 업계를 떠납니다. 그리고 업계를 떠나, 저는 드래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볼 수 있네요. 그래요, 그래. 날 겁줘봐, 드래곤. 날 다치게 해봐! 네 발톱이 내 영혼을 찢는 걸 느낄 수 있어.'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죠. 청중들이 정말 놀랐습니다. 저는 제 검, 진짜 검을 뽑아 들어올리며 소리쳤습니다. '와라, 드래곤. 너와 싸울 것이다! 준비!' 그리곤 빠르게 강당을 내려와 문으로 달려나갔고, 다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게임계와의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만약 크로포드의 결별이 삶보다 컸다면, 그의 결별 이후의 야망은 훨씬 더 컸다. 크로포드의 목표는 새로운 예술 형식,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것이었다. "18개월, 어쩌면 2년이 걸려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구성을 생각했었습니다. 이제 7년 혹은 12년간 그걸 작업해왔네요."

정확이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 뭘까? 크로포드는 설명했다. "사물이 아닌 사람에 대한 게임입니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꼭 영화가 가졌던 문제 같은 겁니다. 영화가 정말로 무엇인지 아는 데는 50여년이 걸렸죠. 한 세기를 돌아, 생각은 영화란 관객이 앉아있는 곳에 카메라가 앉아있는 연극 같은 것이란 것에 닿았습니다. 그것이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인 겁니다. 사람들은 그걸 확신하지 못 하죠."

크로포드가 말하길, 가장 가까운 것이 마이클 마티스와 앤드류 스턴이 만든 <퍼사이드>(Façade)라는 인터랙티브 스토리라고 한다. <퍼사이드>는 뉴욕타임즈의 주류 논평가들로부터 '비디오게임의 미래'라 불리며 널리 칭찬받아왔다. 크로포드도 그랬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이제껏 실제로 만들어진 인터랙티브 스토리 중 최고"라고 한다.

하지만 비판이 없으면 크로포드가 아닐 것이다. "<퍼사이드>는 유일하게 진실된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지만, 그저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 이야기는 단지 세 명의 인물, 하나의 무대, 제한된 행동들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아주 좋고, '에라스매트론'도 그럴 거라고 주장할 수 없게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문제'를 너무 좁게 정의했습니다."

'에라스매트론'은 크로포드의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기술이다. 그리고 그 '문제'란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풍부함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은 증가하는 것만으론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는 설명했다. "낭만. 단지 키스라는 이름의 제스쳐를 허용해서 게임 속에 낭만을 넣을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낭만은 키스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행동의 배열입니다. 진짜 사회적 상호작용은 한번에 가야 하는 거대한 한 걸음입니다. 한 번의 작은 걸음으로는 닿을 수 없죠."

말하자면, 크로포드는 모든 진정한 인간적 상호작용을 컴퓨터 환경 속에 압축하는 플랫폼을 만들려하고 있는 것이다. "저는 인간 행동의 전부를 한번에 가져오고 싶습니다. 수학적 감각으로 완성되었고, 모든 극적으로 중요한 활동들을 다루는 것을요. 그리고 그것은 빈틈없이 완성된 것이어야만 합니다"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하자, 크로포드는 정말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빛의 속도보다 빠른 것을 이론화하는 중이었고, 불충분과 미결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에라스매트론으로 처음 제시한 해결법은 불충분했습니다. 스토리제작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죠. 제가 지금 가진 해결법은 언어, '데키토'를 만드는 것입니다. 약 천여개의 단어밖에 없는 작은 언어고, 골격만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뭐든지 할 수 있고,. 어떤 인간 행동이라도 묘사할 수 있습니다."

데키토 코드의 견본을 잠시 살펴보았을 때, 거의 두 시간이나 크로포드와 인터뷰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에게 자신을 평가해달라고 하기로 했다. "당신을 보면 상대성 이론 이후의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생각납니다. 알버트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길을 잃었나요?"

크로포드는 잠시 생각했다. "제 생각에도 상대성 이론 이후의 아인슈타인에 저를 비교한 게 적절하군요. 저는 우리 모두의 문제를 풀어줄 웅대한, 통일된 이론을 찾고 있습니다. 아직 그 답을 만들지 못 했죠. 그와 내가 다른 점이라면 아인슈타인은 정말로 어둠 속을 더듬어서 갔다는 겁니다. 그는 절대 큰 한 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죠. 그에 반해, 저는 에라스매트론이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매티스와 스턴이 통일장 이론의 작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사의하고 한없이 어렵습니다. 제가 그걸 끌어낼 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여전히 성공의 가능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세대의 훌륭한 인물들이 그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에 뛰어든다는 것은 천재들의 비극이다. 테슬라는 라디오를 발명했고 그가 방송의 힘에 대한 무모한 모험에 착수하기 전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아인슈타인은 그가 죽음까지 끌고 간 통일장 이론에 관심을 가지기 전, 우리에게 특수/일반 상대성 이론을 주었다. 크리스 크로포드와 꽤 닮은 면이 있다. 아마 그의 세대에서 가장 타고난 디자이너이고, 유사한 운명을 가졌다는 점이 말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사시가 오륜서와 함께 그 고독의 황야에서 나타났을 때처럼, 크로포드가 나타난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일문일답
Q. 어디 출신인가요?
A.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태어났습니다. 10년을 거기서 보냈죠. 11살때 캘리포니아로 이사했습니다. 21살이 되어 미주리 주의 대학원에 갈 때까지는 거기서 살았죠. 2년간 네브라스카에서 교직을 맡았고,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9년 전에 오레건으로 왔네요.

Q. 몇 살이신가요?
A. 55살입니다. 나를 업계에서 가장 늙은 사람으로 만드는 나이죠.

Q. 가족이 있나요?
A. 부인이 있는데, 아이는 없습니다.

Q. 게임하길 좋아하나요?
A. 글쎄요, 그렇게 게임을 많이 하진 않습니다. 그건...지루합니다. 이따끔 5분을 죽이려고 솔리테어를 하죠.

Q.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뭔가요?
A. <스타 워즈 에피소드 III>일 겁니다.

Q. 어떤 술을 마시나요?
A. 안 마십니다.

Q.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의 맛은요?
A. 쵸콜렛.

Q. 휴가는?
A. 휴가는 안 갑니다. 저는 숲에 살고 있습니다. 스스로 재충전이 필요하면 밖으로 나가 나무나 덤불을 베거나 합니다.

Q. 업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군가요?
A. 고든 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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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때려주자 2008/06/19 00:57 Address Modify/Delete Reply

    크로포드는 상호작용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군요. 그에게 있어서 게임의 핵심요소라고 짐작할 수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