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http://www.theswapmeet.com/articles/crawford.html

인터뷰 시기는 1998년으로 추정되는데, 크로포드 형님의 게임업계에 대한 태도와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점이 잘 보인다.

어떻게 게임 디자인 업계에 들어왔나요?

1966년, 제 친구가 <전격전>(Blitzkrieg)이라는 종이로 된 전쟁게임을 보여줬죠. 친구랑 그걸 갖고 놀며 열광적인 전쟁게이머가 됐어요. 그리고 그로부터 나만의 디자인을 생각하기 시작했죠.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는 전쟁게임을 프로그래밍했죠. 그리고 1979년에 아타리에서 일을 얻은 겁니다.

게임 디자인을 잘 하려면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요? 그건 가르칠 수 있는 걸까요?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의 폭입니다. 게임 디자인은 프로그래밍이 특화된 어떤 형태가 아니에요. 모든 위대한 디자이너들이 경제, 역사, 음악, 과학 등 넓은 지적 욕심을 가지죠. 또 중요한 건, 끊임없이 만족할줄 모르는 지적 호기심입니다. 모든 위대한 디자이너들은 애독가들이에요.

다른 게임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하면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세 가지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나리오를 전개하거나 기존의 게임 장르를 따르거나, 아니면 기술적 전제에서 시작하죠.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예. 무엇을 이룰 것인가 결정했으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겁니다.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면서도, 하기 힘들죠. 예를 들어, 내 마지막 게임인 <패튼의 역습>(Patton Strikes Back)은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 전쟁게임'을 만들자는 목표로 디자인되었습니다. 그 이전의 <밸런스 오브 플래닛>(Balance of the Planet)은 '사람들에게 환경 문제가 경제와 문화적 문제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준다'는 목표로 디자인되었죠. 제 가장 독창적인 디자인인 <믿음과 배반>(Trust and Betrayal)은 '동물에게 말한다'[각주:1]를 목표로 만들었구요. 당신이 말한 세 가지 방법에는 뚜렷한 목표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 한다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죠. 어디로 가는 지 모른다면, 절대 도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프로젝트를 시작하나요?

목표를 설정합니다. 중요하고, 제가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걸로요. 그리고 그 목표에 닿을 방법을 탐색합니다. 보통은 어려운 목표를 선택하니까, 그 탐험에 종종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죠. 만족스러운 전략을 발견하면, 그를 실현하는 일에 착수합니다. 하지만 때로 보기 흉한 방법이 나오기도 해서, 즉시 다시 디자인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죠. 결국은 되게 만듭니다.

당신의 일을 어떻게 조직화하나요? 미리 정해둔 작업 공정이 있나요?

디자인 문제를 다루는 어떤 방법을 설정하지는 않고, 그저 부지런하게 일을 해나갑니다. 어려운 문제를 피하지 않죠. 정말 어떤 흥미로운 문제는, 표준화된 방법에는 적용할 수 없을만큼 새롭습니다. 제품을 신속하게 찍어내고 싶다면, 기계나 기계 같은 사람을 얻어야죠.

당신의 밑천은 뭐고 그걸 어떻게 이용하나요?

책들, 컴퓨터, 컴파일러, 펜과 종이, 작업하는 동안 들을 음악, 생각할 동안 그 사이를 걸어갈 나무들이죠. 책은 저를 가르치고, 컴퓨터는 저를 화나게 하고, 컴파일러는 저를 좌절시키고, 종이는 내 생각을 분명하게 하고, 음악은 내 마음을 조화롭게 하고, 나무들은 제 관점을 유지하게 해주죠.

가장 큰 기술적 한계는 뭔가요? 어떻게 대처하나요?

형편없는 입력장치입니다. 키보드와 마우스는 제 사용자를 말 못 하는 바보로 만듭니다. 말을 못 하는 사용자들과는 잘 상호작용할 수가 없죠. 컴퓨터 시스템이 출력장치에 쓰는 비용의 절반만이라도 입력장치에 쓴다면!

어디서 영감을 얻습니까? 정신적 스승은 누구인가요?

제 영감은 제 주변 모든 것, 제가 상호작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옵니다. 슈퍼마켓의 현금 출납원, 보조 수의사,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이웃, 박사 친구, SF 소설가, 잉글랜드의 프랑스 숙녀, 공인중개사까지. 컴퓨터계 사람들은 최소화합니다. 끼리끼리 노니까요.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서 진짜 세계는 못 보고 있죠.

제 정신적 스승은 에라스무스(Erasmus, 1466-1536)입니다.

게임 디자이너란 직업, 그리고 그간 만들어진 작품들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렇게까지-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변해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게임 디자인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잠재력은 그리 없어 보입니다. 게임은 만화가 그랬던 것처럼 안정된 상황에 머무르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만화들이란, 마케팅의 관점에서 볼 때, 40년 전의 만화들과 다를 게 없습니다. 예술적으로 볼 때는 어떤 진보가 있었습니다만, 가장 극적인 변화는 용두사미라는 느낌이었죠. 만화의 기본적인 정체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 게임이 지금 똑같은 위치에 있죠.

게임의 장르를 어떻게 구체화할까요? 예를 들어 책이나 영화처럼 퍼즐, 물리적 기술, 싸움, 잠입, 사회적 교류가 없는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 있을 수 있을까요?

게임이 책이나 영화처럼 발전할지 정말 의구심이 드네요. 게임 업계는 80년대 후반에 그렇게 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기적인 성공에 매달리며 그 기회를 의식적으로 거절해버렸죠. 좁은 공간에서 서로 이익만 내려고 하다. 그 속에서 절대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게 됐습니다.

게임의 대중은 분명히 정해져있습니다.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네요. 우리는 우리의 소비자가 누군인지 정확히 알고 있죠. 젊은 남성이요. 그리고 그 외의 나머지는 우리의 소비자가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죠. 더 나쁜 건, 그 외의 나머지 사람들도 그걸 안다는 겁니다.

미래에 뭘 하고 싶으신가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입니다.

언젠가 그것은 새로운 산업이 될 겁니다. 게임과는 구별되는 거죠. 지금 당장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제게는 컴퓨터 게임이 신선하고 경험해본 적이 없었던 잠재력으로 끓어오르던 1970년대의 '좋았던 시절'처럼 느껴집니다.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 뭔지 설명해줄 수 있나요? 당신의 에라스매트론 프로젝트도요. 이 '에라스매트로닉 픽션'의 잠재력 뭔가요? 게임 디자인에서 잃어버렸던 건가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은 '극이 들어간 게임'도 아니고 '극적으로 흥미로운 인물이 있는 게임'도 아닙니다. 그의 의지를 가진 플레이어를 위해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극의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플레이어가 흥미롭고 극적으로 합당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유령의 집에 있게 된다면, 단순히 '안으로 들어간다'나 '머무른다' 사이에서 선택하는 게 아닙니다. 후자의 선택은 전혀 극적으로 합당하지 않습니다. 심리적으로는 합당하지만, 극적으로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공간적인 논리가 아니라 극적인 논리를 따르는 시스템입니다. 엔터프라이즈 호의 함장이 한 명의 인명을 구하기 위해 승무원들을 위험에 빠트릴 때, 그는 절대 그 도박에서 지지 않죠. <스타트렉>의 우주 속에서 그가 진다는 것은 극적으로 합당하지 않은 겁니다. 그런 극적인 논리는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알고리즘으로 약분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죠. 따라서 프로그래머가 아닌, 소설가, 연극작가, 각본가에 의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런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탄생한 제품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세계입니다. 완성된 극적인 우주는 예술가가 소통하길 원하는 모든 극적인 진실들을 포용하고 있죠. 스토리세계는 공간적인 지역이 아닙니다. 물리적인 시뮬레이션을 위한 명세사항이 열거된 것이 분명 아니에요. 대신 소품과 인물이 올라서있는 무대의 집합입니다. 예술가는 인물간에 생기는 다양한 종류의 상호작용을 서술합니다. 그 상호작용들은 그들의 성격, 관계, 역사에 따라 수행되어야 하죠.

에라스매트론 프로젝트[각주:2]는 이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제1판을 지금 웹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지만, 아직 흠이 많습니다. 제2판은 완성에 다가가고 있어요. 1월말에 알파 버전을 보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에라스매트론을 이용해 이야기세계를 편집합니다. 이 작업의 대부분은 인물 사이에 가능한 상호작용들을 정의하는 겁니다. 저는 그걸 '동사'라고 부릅니다. 좋은 이야기세계는 적어도 500개 분량의 동사를 필요로 합니다. 예술가는 인물들의 성격, 그들의 관계, 이야기가 벌어지는 무대 또한 정의해야 합니다. 에라스매트론은 또 이야기세계의 수행을 평가하는 많은 분석과 테스트 기능도 제공합니다. 저는 이걸 '리허설'이라고 부릅니다. 예술가가 만들어진 이야기세계에 만족했다면, 그 프런트엔드와 관계가 있는 독립적인 소프트웨어인 스토리텔링 엔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야기세계, 엔진, 그리고 프런트엔드는 플레이어가 이야기세계를 경험하는 데 사용됩니다. 제1판의 프런트엔드는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는데, 제2판의 프런트엔드도 순수하게 텍스트일겁니다. 생산하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프런트엔드를 만들길 바랍니다.

그런 작품들이 게임보다 더 넓은 층의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퍼즐도, 전략적 문제도, 손과 눈을 얼마나 빨리 반응하느냐를 시험하는 것도 아니라 이야기를 제공하는 겁니다.

당신의 전공분야 안이든 밖이든, 최근에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뭔가요?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입니다. 기술적 완전성과 예술적 재능의 뛰어난 조합이죠. 총알이 공기를 가르고 가는 소리, 호위를 받지 않는 탱크가 근접적으로 쉽게 파괴되는 것, 동료를 부축하고 가는 것, 포로를 쏘는 것...그 디테일과 인간적 감정에 주목하게 하는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최근에 당신을 즐겁게 한 책은 뭔가요?

<두번째 기수의 승마>(Ride of the Second Horseman)입니다. 전쟁의 기원에 대한 매력적인 연구물이죠. 저자는 전쟁에 대한 개념이 우리 문명의 여명을 둘러싼 경제적 환경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때문에, 우리 서양인들은 농작물을 파괴해서 적을 굶어죽이는 총력전을 전개했습니다. 중국은 모든 중요한 관개 시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연극같은 양식의 전투를 전개했고, 아즈텍 문명은 그들의 부족한 프로틴을 보충하기 위해 식인 전쟁을 전개했죠.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1. <믿음과 배반>의 부제는 '시붓의 유산(The Legacy of Siboot)인데, 시붓(Siboot)은 크로포드 형님이 키웠던 고양이 부치(Bootsie)의 이름을 거꾸로 한 것이다. 부치는 턱에 난 상처를 치료할 수 없어 안락사를 해야 했는데, 크로포드 형님은 그를 편안하게 해줄 말 한 마디 못 한 것에 큰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그에 대해 생각하던 형님은, '동물과 말하는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발전해 <믿음과 배반>이 되었다. [본문으로]
  2. 이것은 현재의 스토리트론(Storytron)의 인터뷰 당시(1998년으로 추정)의 이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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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넌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니?

    Tracked from 이상한 나라의 발광머리앤 2008/06/09 22:21  Delete

    내가 당신에게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은지 물어봤을 때"MMORPG요.""RTS게임 만들고 싶어요.""크라이 엔진을 쓴 게임이요.""퍼즐게임!"이딴식으로 &nbsp;대답하면 때려줄거다.안 맞으려면?원문 http://www.theswapmeet.com/articles/crawford.html번역 http://crawford.tistory.com/1특히 이 부분 필독. 크리스 크로포드씨가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해 주신다.Q : intervie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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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때려주자 2008/05/31 20:06 Address Modify/Delete Reply

    어느 블로그에서 크리스 크로포드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오늘 여기서 한 번 더 보게 되는군요. 링크